최근 인간 관계에 대해서 문득 의문이 들었다.
- 나는 왜 상대방이 이런 행동을 하면 불편할까?
- 왜 상대방을 통제하고 싶어하는걸까?
- 내가 지금 만약 화를 낸다면 목적이 무엇일까?
깊게 생각해보고 분석해보았다.
우선 난 통제력이 매우 높은 사람인 듯 하다.
내가 인생에서 가장 스트레스 받은 순간을 생각해보면 내 통제를 벗어난 상황이다.
대표적인 예시로 돈이나 연인 관계로 생각이 된다.
물론 이런 상황은 누구에게나 스트레스 겠지만
나는 조금이라도 이런 통제를 벗어나는 상황이 지속되면 우울증 증상이 많이 왔던 것 같다.
인간 관계는 통제를 전혀 할 수 없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건 매우 제한적이다.
내가 어떤 사람과 좀 더 가까워질지가 그나마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지 않나 싶다.
나는 너무 늦은걸 수도 있지만 이제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다른 사람은 통제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나 비교,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다른 사람을 통제하려고 하는 목적은 내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기 싫어서가 가장 큰 것 같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통제하려고 하는 순간 망가지는건 내 자신이다.
인생에서 생각해보면 통제하고 싶었으나 완벽히 통제되는 상황은 정말 손가락에 꼽을 정도인 것 같다.
그마저도 내가 통제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내 스스로 몸을 움직인다고 해서 나를 완벽히 통제하는건 아닌듯이..
두번째로 내가 불편해하는 다른 사람의 행동은 나의 모습과 매우 닮아있다는 점이다.
나는 그것을 바로 인지하지 못한채 정말 불편하다며, 왜 그러는지 이해하지 못하며 다른 사람에게 스트레스 받을 뿐이다.
그러나 그 행동을 의식하면서 나의 행동을 돌아보면 나 또한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것을 인지할 수 있다.
물론 모든 행동이 다 그렇진 않을 수도 있지만 10개의 싫어하는 행동이 있다면 그중 8개는 자신이 가지고 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내가 나쁜 사람일수도..내로남불 이런~..)
나는 이런 나의 안좋은 행동을 깨닫게 해준 다른 사람에게 매우 감사하다.
그리고 이 것을 깨닫고 더이상 다른 사람을 마냥 미워할수만은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다른 사람이 불편해하는 행동을 했을 때 기분이 좋을 수는 없지만,
나는 이제 그 사람들을 불쌍히 생각하고 싶다.
내가 예전에 봤던 글을 잠시 인용해볼까 한다.
타인에 한계와 모순에 분노하고 또 그들에게 나의 옮음을 강요하고자 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 자신의 행복에 기여하는 바는 결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방이 아무리 잘못되고 왜곡된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실제로 나의 옮음이 높은 선의 관점에서 타당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들에게는 그들의 최선이 나에게는 나의 최선이 있음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삶이 경험안에서 그들의 선택하고 있는 관점이 그들에게는 최선이며,
또 그들은 그것이 그들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 믿고 있기게 그것을 선택하고 있는 것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누군가를 바꾸고자 하는 시도는 언제나 논쟁이 되어 옳고 그름의 싸움을 낳으며,
하여 그 안에 분노라는 진실하지 않은 감정을 낳게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을 비난하고, 그들에게 나의 옳음을 강요하는 대신에 그들의 제한된 사고방식에 대해 안타가움을 품으세요.
- 책 내게 진실한 사랑 중에서
2년 전에 봤던 이 글을 이제서야 뼈로 깨닫는다.
인간은 절때로 혼자서는 살 수 없는 동물이다.
건강한 인간 관계를 맺으며
앞으로도 잘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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